[수필] 오렌지
내가 오렌지를 처음 접한 것은 충청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지금부터 꼭 60년 전 일이다. 도로를 통행하는 자동차라곤 하루 종일 3~4대가 고작인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그 날도 동네 또래 너댓명이 어울려 하교하던 길에 신작로에 멈추어 있는 미군 트럭을 보았다. 병사들이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미국인들이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시시덕거리고 떠들면서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당시 우리는 까까중머리에 모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책가방이 아닌 책보를 둘러멘 우리의 모습이 신기하였으리라…. 콧물 닦는 손수건을 앞 고름에 달고 다니면서도 누우런 콧물을 훌쩍거리는 모습이 이상하였을지 모른다. 그들은 뭔가 먹고 있었다. 타이어를 다 고치고 떠나면서 먹고 있던 것 한 개를 우리 쪽으로 던졌는데 그것이 그만 도랑에 떨어져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떠내려가는 그것을 줍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뛰었다. 우리 중에 키가 제일 큰 꺽다리가 먼저 도착하여 집어 들더니 “어이쿠! 폭탄이다~”라며 소스라치게 놀라 냅다 집어 던지고는 줄행랑쳤다. 나는 내 주먹보다도 더 큰 그것을 집어서 집에 돌아왔다. 왠지 나는 개선 장군이 된 기분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온 나는 큰형과 마당에 콩다발을 깔아 놓고 도리깨질을 하시던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나에게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애야! 이건 폭탄이 아니고 미깡이여… 왜정때 읍내 우체국장 딸이었던 요시꼬가 가끔 까먹던 것하고 똑같은 거여…” “아이고! 똑똑헌 내 새끼…” 어머니는 품 안에 나를 안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어머니는 그것의 껍질을 쉽게 벗기고 쪼개어 우리 5남매에게 두쪽씩 나누어 주셨다. 그것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새콤달콤, 입 안에서 녹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맛있는 것을 그때까지 먹어 본 적이 없었다. 하늘 나라에서나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비스런 맛이었다. 새콤달콤하고 단단한 노란 껍질을 갖고 있는 그 신비한 과일을 먹어 본 이후로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동경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오늘은 여러분들의 국가 선호도를 조사하고자 한다. 내가 나라 이름을 부르겠다. 호명하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 손을 들어라. 모두 눈을 감고 절대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아서는 안된다.” 선생님은 프랑스, 덴마크, 스위스, 독일 등 유럽국가를 먼저 호명했다. 이윽고 “미국”을 호명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몰래 주위를 살폈더니 나 혼자만 손을 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호명했는데 살며시 훔쳐보니 반 학생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창피하지 않았다. 평소 미국을 ‘은혜의 나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미국을 막연히 좋아했지만 성장하면서 미국은 한국의 우호국을 뛰어넘어 피를 나눈 동맹국이라는 것을 배웠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카사키 등 두 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과 일제 강점 36년을 종식하고 우리에게 해방을 안겨준 미국이 아니던가. 6·25 한국전쟁때는 3년 동안 3만6000명이 넘는 미군의 희생을 감수하고 그 참혹한 전쟁에서 우리를 지켜 준 나라가 미국이었다. 종전 후 우리 나라를 무상 원조 국가로 지정하여 옥수수 가루와 우윳가루, 치즈 등을 배급해주고 배곯고 있는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 준 미국이 아니었던가.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주말에 외출 나온 미군을 보면 “헬로우! 깁미 초콜렛”을 외치며 쫓아다녔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한국 국민이 미국에 호의적인 것은 사대주의(事大主義)가 아니다. 한때는 모국에서 일부 젊은이들이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을 외치며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 정도 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한 번쯤 돌이켜 보았으면 좋으련만… 맥아더 사령관은 종전 후 “초토화된 한국이 전화(戰禍)를 복구하자면 족히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했다지 않는가? 미국이 ‘은혜의 나라’ 임에는 틀림이 없다. 지금도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70년이 넘도록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자유대한을 지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에 이민 온 후 나는 옛 추억을 그리며 오렌지를 자주 사서 먹는다. 플로리다산 오렌지도 먹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껍질이 얇아서 벗기기가 힘들었다. 캘리포니아산은 껍질이 더 두껍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껍질을 쉽게 벗기셨던 것이다. 어렸을 적 미군이 우리에게 던져 준 그 오렌지는 틀림없이 캘리포니아산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캘리포니아 하늘 아래에서 지금 20년 가까이 숨을 쉬고 있다. 이진용 / 수필가수필 오렌지 하늘 나라 나라 이름 우리 나라